Ch.03 · Ep.01

떠난 자리

Part 1 · Ch.03 판교

떠난 자리

회사 안에서 —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그 사람이 — 처음 — 회사에 들어왔던 자리보다 — 더 — 무겁다.

2018.02.[XX] / 09:14 / 판교 직전 새 사옥

새 사옥의 — 한 책상이 — 비어 있었다.

두 달 전 — 학교를 떠나고 — 새 사옥에 들어온 50명 중 — 한 사람의 책상이었다.

그 사람은 — 시리즈 A 직후에 합류한 — 엔지니어였다. 1년 1개월. 그 1년 1개월 동안, 회사 안의 — 어느 자리에서, 한 번도 — 자기 의견을 — 길게 — 말한 적이 — 없었다. 다만 — 자기 일은 — 매일 — 정확히 — 했다.

전날 저녁, 그 사람의 책상 위에, 사직서 한 장이 — 가지런히 — 놓여 있었다.

내용은 — 두 줄이었다.

[사직 사유] 일신상의 사유.
[퇴사 희망일] 즉시.

이름은 — 사직서의 — 가장 아래에 — 한 줄로 — 적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책상 앞에 — 그 사람은 — 오지 않았다.

그것이 — 그 사람이 — 회사를 — 떠나는 — 한 가지의 — 방식이었다.


김현화가, 그 책상 앞에 — 한 번 — 잠깐 — 와서 — 사직서를 — 자기 손으로 들고 갔다. 자기 자리로 — 가져가서 — 한 번 — 들여다본 다음 — 한 번 — 나에게로 — 왔다.

"…대표님."

"…네."

"…한 사람이 — 떠났습니다."

"…알겠어요."

"…일신상의 사유 — 라고만 — 적혀 있어요."

"…네."

"…저희가 — 그 — 진짜 사유를 — 따로 — 알아봐야 할까요."

나는 — 잠시 답을 골랐다.

"…아니요."

"…네?"

"…그 사람이 — 일신상의 사유 — 라고 — 적었으면, 그게 — 그 사람이 — 우리에게 — 줄 수 있는 — 정직함의 — 마지막 한 줄이에요."

"……."

"…우리는 — 그 한 줄을 — 그대로 — 받아들이는 게, 그 사람이 — 우리에게 — 보낸 — 그 마지막 — 정직함에 대한 — 가장 어른의 — 답이라고 — 생각해요."

김현화가 — 한 번 — 짧게 — 끄덕였다.

이 한 마디가 — 그 후 9년 동안, 회사 안에서 — 누군가가 — 떠나는 모든 자리에서, 우리가 — 한 번도 — 그 사람의 — 마지막 한 줄을 — 의심하지 않은 — 한 가지의 — 자세였다.


2018.02.[XX] / 14:00 / 판교 직전 새 사옥, 빈 책상 앞

그날 오후, 나는 — 그 빈 책상 앞에, 한 번 — 잠깐 — 가서 — 앉아 봤다.

책상 위에는, 그 사람이 — 1년 1개월 동안 — 매일 — 자기 일을 — 한 — 한 가지의 — 흔적이, 거의 — 없었다.

평소 책상 위에 — 작은 식물 화분 하나도, 사진 액자 하나도, 사적인 머그컵 하나도 — 없었다.

그 사람의 책상은 — 1년 1개월 동안, 회사가 — 자기에게 빌려 준 — 자리에 — 자기 사적인 어떤 자리도 — 한 번도 — 새로 — 만들어 두지 않은 — 한 가지의 — 책상이었다.

빈 책상이, 그 사람이 — 회사 안에서 — 1년 1개월 동안 — 가져 온 — 한 가지의 — 자세를 — 처음으로 — 정직하게 — 나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사람은 — 회사 안에서 — 손님 이었다.

회사가 — 한 사람을 — 1년 1개월 동안 — 손님으로 — 두었다는 사실을, 그 빈 책상 앞에 — 앉아서 — 처음으로 — 받아 들였다.

손님으로 두었다는 것은 — 그 사람이 — 회사 안에서 — 식구 가 — 되지 — 못했다는 — 의미였다.

그 식구가 되지 못한 한 가지의 — 책임이, 회사를 만든 사람의 — 한 가지의 — 자리에 — 같이 — 있었다.

이 책임을, 그 빈 책상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 한 번 — 정직하게 — 인정했다.


2018.02.[XX] / 19:00 / 회사 카페 한 자리

그날 저녁, 박효정이 — 회사의 — 한쪽 카페 — 자리에서, 한 번 — 잠깐 — 나에게 — 짧게 — DM 을 — 보냈다.

박효정: 대표님, 카페 — 잠깐 — 시간 — 되시나요?

나는 — 그 자리로 — 갔다.

박효정이 — 노트를 — 한 권 — 책상 위에 — 올려놓고 — 앉아 있었다.

"…박 매니저님."

"…네."

"…무슨 일이세요."

"…오늘 — 떠난 한 사람에 대해 — 한 가지 — 말씀드리고 싶어요."

"…네."

"…그 사람이 — 떠난 진짜 사유는 — 일신상 이 — 아닐 거예요."

"……."

박효정이 — 한 번 — 자기 노트를 — 들여다봤다. 노트에는 — 그 사람과 관련된 — 짧은 메모들이 — 몇 줄,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은 — 회사 안에서 — 자기 의견을 — 한 번도 — 길게 말한 적이 — 없었어요. 그러나 — 슬랙의 어느 채널에서, 자기 의견의 — 짧은 — 흔적을 — 일주일에 — 한두 번씩 — 남겼어요. 저는 — 매니저로서 — 그 흔적들을 — 1년 동안 — 모아 봤어요."

"…그래서 — 어떤 — 결로 — 모이던가요."

"…그 사람은 — 회사 안의 어느 한 가지의 결정이 — 작은 사람을 더 작게 만든다 고 — 자기 안에서 — 한 번씩 — 짧게 — 적고 있었어요."

"…그게 — 어떤 결정이었어요."

"…한 가지로 특정되지 않아요. 회사가 — 50명을 향해 가는 어느 시점에서, 결정의 — 어느 한 가지의 — 결의 무게가, 효율 쪽으로 — 한 번씩 — 옮겨 가던 자리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 그 결의 옮겨 감을 — 자기 안에서 — 한 번씩 — 작은 사람을 더 작게 만든다 라고 — 짧게 — 표현하고 있었어요."

이 한 마디가 — 그 카페의 — 그 자리에서, 나에게 — 한 가지를 — 새로 — 가르쳐 줬다.

회사가 어른이 되어 가는 자리에서, 회사의 결정의 결이 — 효율 쪽으로 — 한 번씩 옮겨 가는 일이 — 한국 자본 시장의 — 한 가지의 —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회사 안에서 — 그 흐름을 — 작은 사람이 더 작아지지 않게 하는 결의 무게 쪽으로 — 한 번씩 — 잡아 주는 — 한 가지의 — 자세가, 어딘가에 — 한 사람의 책상에서 — 살아 있어야 했다.

박효정이 — 그 자리에 — 그 책상을 — 한 번 — 잠깐 — 보여 주고 있었다.

"…박 매니저님."

"…네."

"…고맙습니다."

"…네."

이 짧은 카페의 자리가 — 그 후 9년 동안, 두 사람이 — 회사 안의 — 어느 어려운 결정의 자리에서 — 한 번씩 — 다시 — 마주 앉게 되는 — 첫 — 두 번째 자리였다.

(첫 번째는 — 다섯 달 전의, 7월의 — 회사 인근 카페의 자리.)


2018.02.[XX] / 22:00 / 회사 옥상

그날 밤, 나는 — 회사의 — 옥상으로 — 한 번 — 올라가 봤다.

새 사옥의 옥상은 — 학교 인근 작은 오피스의 옥상보다 — 한 층 더 높았다.

옥상에서, 판교 쪽의 — 흰 불빛을, 한 번 — 더 — 들여다봤다.

판교의 — 한 가닥의 — 흰 불빛 너머의, 어느 한 정거장 — 떨어진 자리에, 그날 떠난 한 사람의 — 자취방의 — 노란 불빛이, 어디엔가 — 켜져 있었을 것이었다.

그 노란 불빛을, 그 자리에서 — 한 번 — 가늠해 봤다.

가늠하지 못했다.

가늠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 자기 자신에게 — 한 번 — 다시 — 약속했다.

회사가 — 어른이 되어 가는 어느 자리에서, 작은 사람이 더 작아지지 않게 하는 결의 무게 를, 회사 안의 — 누군가의 — 한 책상에 — 항상 — 살려 두기로.

이 약속이 — 그 후 9년 동안, 박효정의 — 한 책상의 — 한 가지 — 무게로, 회사 안에서 — 한 번도 — 꺼지지 않는 — 한 가닥의 — 노란 불빛이 됐다.


— Episode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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