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1 · Ep.08

슬랙이 켜진 날

Part 1 · Ch.01 0001 — 출항

슬랙이 켜진 날

회사가 회사다워지는 순간은 —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날이 아니라, 사람들이 같은 채널에 들어오는 날이다.

2026.03.[XX] / 23:11 / 강남 어딘가, 021flow 사무실

EXIT 이 끝난 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밤, 나는 구름 슬랙 워크스페이스를 — 마지막으로 한 번 — 열었다.

10년 11개월 동안 매일 켜져 있던 그 워크스페이스의 채널 목록이, 그날 밤 화면에 떴다. 채널은 — 천 개가 넘었다. #general. #announce. #dev-ide. #dev-edu. #design. #sales. #hiring-2017. #판교-사무실-입주. #코로나-비상-대응. #카카오-만남-준비. #m-and-a-진행. #exit-d-day.

그 천 개의 채널 중에서, 나는 — 가장 위에 있는 한 채널을 눌렀다.

#general.

스크롤을 — 가장 위까지, 끝까지 올렸다.

10년 11개월의 메시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에 — 노트북 팬이 두 번 쉬었다 돌았다.

가장 위에 한 메시지가 있었다.

wayne 2015년 3월 27일 오후 4:32
안녕하세요. 여기서 우리가 같이 일합니다.

그 한 줄이 — 구름 슬랙 워크스페이스의 첫 메시지였다.

그날 그 한 줄을 친 사람이 — 11년 전의 나였다는 사실이, 그 한 줄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날 밤의 나에게 — 거의 — 다른 사람의 일처럼 — 멀게 느껴졌다.


2015.03.27 / 16:30 / 산학협력관 201호

산학협력관 201호의 책상은, 그 시점에 — 다섯 개였다.

첫 책상은 내 책상. 두 번째 책상은 석유남의 책상. 세 번째 책상은 — 작년 4월에 1,200만원을 받고 산 빈 책상. 그 빈 책상은 — 그해 가을부터 비어 있지 않게 됐다.

세 번째 책상에 앉은 사람은 — 박사 동기 후배였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1년 차가 아니라 2년 차. 회사 합류 전엔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턴으로 일하던 친구였다.

네 번째 책상은 — 디자이너. 학교 미대를 갓 졸업한 친구. 시급으로 시작했다가,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다섯 번째 책상은 — 그 주에 합류한 — 또 한 명의 개발자. 학부 휴학생. 이름은 — 박찬석.

박찬석은, 그 학기 — 회사가 — 산학협력관 시절 끝의 — 어느 자리에서 — 처음으로 — 인턴 모집의 — 한 가지의 — 짧은 — 자리를 — 가졌을 때, 자기 자리를 — 처음으로 — 회사 안에 — 가져 온 한 사람이었다. 인턴이었다가, 그 다음 주에 — 정직원으로 — 한 번 — 자기 자리를 — 옮긴 — 한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 매우 — 똑똑했다. 첫 면접에서, 한 가지의 — 자기 자신에 대한 — 매우 — 정중한, 매우 — 분명한, 한 가지의 — 자세를, 자기 자리에서 — 한 번에 — 보여 주셨다. 그 자세가, 다섯 번째 자리에 — 자기를 — 한 번 — 앉히게 한 — 한 가지의 — 정직한 — 이유였다.

다만, 한 가지가 — 그 친구의 자리에서 — 매주 한 번씩 — 자기 자리를 — 미세하게 — 흔들리게 — 만들고 있었다. 내가 — 이 다섯 명 중에 — 가장 — 똑똑한 사람이라는 한 가지의 — 자기 자리에 대한 — 한 가지의 — 자신감 의 — 자세.

그 자세가, 매주 한 번씩 — 다섯 명 중 다른 네 명의 — 자기 자리를 — 미세하게 — 작아지게 — 만들고 있었다. 박찬석의 — 한 가지의 — 똑똑함은 — 정확했다. 다만 — 그 똑똑함이, 회사 안에서 — 다른 사람의 자리를 — 한 번도 — 작아지게 만들지 않게 가져 가는 한 가지의 — 자세 위에서 — 자기 자리를 — 가지지 — 못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었다.

다섯 명이 — 산학협력관 201호의 10평이 안 되는 호실에 — 책상 다섯 개로 — 거의 그 호실을 다 채우고 있었다.

3월의 그 어느 오후, 나는 — 그 다섯 명을 한 번 모이라고 했다.

"…우리 — 카톡 단톡방, 너무 정신 없지 않아?"

다섯 명이 한 번 끄덕였다. 그 시점까지 우리는 — 회사 운영 전체를 — 한 개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하고 있었다. 코드 커밋 알림도, 외주 일정도, 점심 메뉴 정하기도, 다 같은 단톡방. 메시지가 하루에 — 300개가 넘었다.

"…미국 회사들 — 슬랙이라는 거 쓴대."

"…뭐예요?"

"…메신저인데 — 채널을 — 주제별로 나눠. 코드는 코드 채널, 영업은 영업 채널, 점심은 점심 채널."

"…그게 — 뭐가 달라요?"

"…읽지 않아도 되는 메시지를, 안 읽을 수 있어."

다섯 명이 한 번 더 끄덕였다.

그 끄덕임의 의미를 — 나는 그 자리에선 정확히 읽지 못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다섯 명이 동시에 — 읽지 않아도 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를 —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 자기 안에 자리 잡게 한 것 같았다.

읽지 않아도 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은 — 회사가, 한 개의 단톡방으로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회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뜻이 — 그날 오후 4시 32분에, 슬랙 워크스페이스의 #general 첫 메시지로 — 한 줄로 박혔다.

wayne: 안녕하세요. 여기서 우리가 같이 일합니다.


첫 일주일은 — 다섯 명 모두 — 슬랙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석유남이 한 번 물었다.

"…형. 이거 — 답장은 어떻게 해요."

"…쓰레드로 — 답하면 돼."

"…쓰레드가 뭐예요."

다섯 명에게 슬랙을 가르치는 데 — 일주일이 걸렸다. 가르치는 동안, 카카오톡 단톡방은 — 점점 조용해졌다. 한 사람이 슬랙으로 옮겨가면, 그 사람이 카톡으로 보내던 메시지가 슬랙으로 옮겨갔다. 두 번째 사람이 옮겨가면 — 두 사람의 대화가 슬랙으로 옮겨갔다. 다섯 번째 사람이 옮겨간 그 주의 금요일 — 카카오톡 단톡방은 — 그날 한 메시지도 안 올라왔다.

그 금요일 저녁, 나는 — 카카오톡 단톡방을 — 한 번 더 열어 봤다. 마지막 메시지는, 디자이너 친구의 한 줄이었다. 3일 전이었다.

점심 뭐 먹어요?

이 한 줄이 — 그 단톡방의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그 단톡방을 — 나는 그 자리에서 닫지 않았다. 그 단톡방의 이름은 — 구름 식구들 이었다. 식구라는 단어가 — 회사의 어느 정확한 무게를 — 단톡방에서 슬랙으로 옮기는 게 — 그 자리의 나에게는 — 어쩐지 — 한 번에 되지가 않았다.

식구라는 단어는 — 채널이 없는 한 자리에서 모두가 같이 떠드는 자리에서만 살 수 있는 단어였다.

채널이 생긴 회사의 — 식구라는 단어는, 다른 무엇으로 바뀌어야 했다.

그 다른 무엇이 무엇인지를 — 그 시점의 나는 — 한 번도 정확히 답하지 못했다.


2015.04.[XX] / 14:00 / 산학협력관 201호

슬랙을 켠 지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오후, 한 통의 메일이 회사 메일 주소로 들어왔다.

From: [redacted]@[N사 도메인]
Subject: 안녕하세요, N사 투자팀입니다.

류성태 대표님 —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희가 — 구름 IDE 를 — 한 번 — 자세히 — 검토를 좀 — 했으면 합니다.
가능한 시간에 — 미팅 한 번 — 잡을 수 있을까요.

나는 그 메일을 — 두 번 읽었다.

세 번 읽었다.

석유남에게 그 화면을 보여 줬다.

석유남이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형."

"…응."

"…N사 — N사 — 맞아요?"

"…그렇네."

"…우리한테 — 왜요."

나는 그 자리에서 답을 길게 고르지 않았다.

"…모르겠다. 일단 — 만나 보자."

석유남이 한 번 끄덕였다. 다섯 명 중 — 그 메일을 본 사람은, 그 시점에 — 두 명뿐이었다. 두 명은 — 며칠 동안 — 다른 세 명에게 그 메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회사가 — 어느 외부 자본의 검토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에는, 한 번의 호흡이 필요한 일이었다.

호흡을 한 번 쉬는 동안 — 나는 답장을 썼다.

From: [email protected]
Subject: Re: 안녕하세요, N사 투자팀입니다.

안녕하세요. 류성태입니다.
미팅 — 가능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 어떠신가요.

답장을 보내고, 나는 —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3월 27일 오후 4시 32분에 "여기서 우리가 같이 일합니다" 라고 한 줄을 친 그 워크스페이스가 — 한 달 만에 — 어느 외부 자본이 검토하는 회사가 됐다.

회사가 회사다워지는 데 — 한 달이 걸렸다.

회사다워진다는 것의 의미를, 그 시점의 나는 — 한 번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했다.

가늠하지 못한 채로 — 화요일 오후의 미팅이 다가오고 있었다.


2026.03.[XX] / 23:48 / 021flow 사무실 (회귀)

10년 11개월의 메시지를 — 가장 위까지 거슬러 올라간 그날 밤, 나는 — 그 첫 메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봤다.

wayne 2015년 3월 27일 오후 4:32
안녕하세요. 여기서 우리가 같이 일합니다.

그 한 줄 아래에 — 다섯 명의 첫 답장이 차례로 떠 있었다.

james: 형. 잘 부탁드립니다.
(박사 동기 후배):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
(휴학생 개발자): 잘 부탁드립니다.
(나 wayne — 답장): 우리 — 잘 해 봅시다.

이 다섯 줄을 — 11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나는 — 그 다섯 명 중 두 명만이, EXIT 의 마지막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 새삼 알게 됐다.

석유남과 나, 두 명.

다른 세 명은 — 11년 동안 — 어느 시점엔가 — 다른 자리로 떠났다.

박찬석은 — 그 다섯 중 — 가장 — 먼저 — 자기 자리를 — 떠났다. 슬랙 가입 후 — 몇 달이 채 안 됐다. 그 친구는, 떠나면서 — 한 가지의, 매우 — 정중한 — 자세의 — 한 마디를 — 자기 자리에서 — 보태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가 떠난 자리 옆에 — 한 가지의 — 미세한 — 분위기를, 잠깐 — 자기 손으로 — 잡쳐 두고 갔다.

11년이 지난 그날 밤, 그 친구의 — 마지막 — 슬랙 메시지를 — 한 번 —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친구가 떠난 — 그 짧은 — 잡힘의 자리가, 그 후 — 11년 동안 — 회사 안에서 — 어떤 결의 — 사람을 — 어느 자리에 — 앉히지 말아야 하는가 의 — 한 가지의, 가장 정직한 — 첫 — 기준의 — 자리가 됐다.

다른 두 사람도 — 떠난 자리들이 — 그 후의 11년 안에 — 각자의 결로 — 자기 자리를 — 가졌다.

떠난 사람들의 메시지가 — 그 워크스페이스의 어느 채널 어느 쓰레드 어느 시점엔가 — 마지막 한 줄로 남아 있었다.

그 마지막 한 줄이 — 어느 메시지인지를, 나는 그날 밤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 그 첫 다섯 줄의 인사를 — 다시 한 번 들여다본 것만으로 — 11년의 — 한 가지의 무게가 — 그날 밤 화면 위에 — 정확히 — 떠 올랐다.

회사다워지는 순간은 —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날이 아니라, 사람들이 같은 채널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리고 — 그 채널을 떠나는 날이,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날이었다.

11년 동안 — 그 워크스페이스에 들어왔다 떠난 사람의 수는, 셀 수가 없었다.

그 셀 수 없음이 — 회사가 회사로 살아남았다는 한 가지의 — 가장 정직한 증거였다.


— Episode 8. 끝

— 챕터 1 「0001 — 출항」 끝

— Season 1 「두 개의 새벽」 (S1E1 ~ S1E8)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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