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0 · Ep.05

산학협력관 201호

Part 1 · Ch.00 두 개의 새벽

산학협력관 201호

8년의 새벽이 5,000만원이 됐고, 그 5,000만원이 그 다음 새벽의 연료가 됐다.

2025.12.18 / 17:38 / 수원 어딘가, 차 안

EXIT 서류에 사인을 마친 그날 오후, 나는 차를 몰고 강남에서 수원으로 내려갔다.

어디로 갈지를 — 차에 타기 전에는 정하지 않았다. 차를 출발시킨 다음, 한참을 일직선으로 달리다가, 한 번 깜빡이를 켰을 때 자기 차의 핸들이 어느 방향으로 돌고 있는지를 — 그제서야 봤다.

수원이었다.

12년 9개월 만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라고 안내했다.

캠퍼스 정문에서 차를 잠시 세웠다. 정문은 그대로였다. 안쪽의 건물 배치는 — 몇 개가 새로 들어서 있었다. 12년 9개월의 시간이, 정문 너머의 풍경에서 정확히 보였다.

차를 다시 몰아 — 산학협력관 앞에 세웠다.

산학협력관도 그대로였다. 4층 짜리 건물. 회색. 정면에 금속으로 쓴 글씨.

차에서 내렸다. 2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2층 복도 끝까지 걸었다.

가장 작은 호실. 201호였다.

문 옆에 회사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회사였다.

그 자리에서 — 12년 9개월 전을 떠올렸다.


2013.02.[XX] / 14:00 / 산학협력관 1층, 산학협력단 사무실

면접을 보러 갔다.

창업보육센터 입주 신청. 서류 한 장 들고. 작성한 곳이 깨끗하지 않은 한 장이었다.

산학협력단 담당자 한 분이 책상 너머에 앉아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박사 1년차 — 류성태."

"네."

"전공이 — 삼성전자 IT융합학과."

"네."

"…그러면 졸업 후에 삼성에 가시는 거죠?"

"…그게 — 좀 복잡합니다."

"복잡하다는 건."

"제가 — 회사를 만들려고요."

담당자 분이 안경을 한 번 올렸다. 서류를 다시 봤다. 회사 이름 칸에는 "구름" 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업 분야 칸에는 "클라우드 기반 통합 개발 환경"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사 병행하시면서요?"

"네."

"혼자요?"

"네."

"공동창업자 없이?"

"네."

담당자 분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분의 책상 위에는 — 다른 입주 신청서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그 무더기 안의 신청서들엔 대부분 두 명, 세 명의 이름이 붙어 있을 것이었다. 내 신청서엔 한 명이었다.

"…이 호실, 가장 작은 호실인 거 아시죠."

"네."

"왜 작은 호실을 신청하셨어요."

"…큰 호실은 — 지금은 안 어울려서요."

담당자 분은 한 번 웃었다. 그 웃음은 — 학생의 짧은 답을, 어른이 가장 잘 받아 줄 때 짓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알겠습니다. 입주 — 진행해 보세요."

그 한 마디가 — 12년 9개월 동안 — 내가 받은 첫 번째 어른의 허락이었다.


2013.03.[XX] / 09:21 / 산학협력관 201호

3월 초 — 호실 열쇠를 받았다.

문을 열었다. 빈 방이었다. 가로 약 5미터, 세로 약 5미터. 10평이 안 됐다. 한쪽 벽에 작은 창문이 하나. 그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 다음 건물의 회색 벽이었다.

천장의 형광등 두 개 중 하나는 — 들어오자마자 한 번 깜빡였다. 그 깜빡임이 그 호실의 첫 인사였다.

방의 한가운데에 서 봤다. 양팔을 벌려 봤다. 양손 끝이 벽에 닿지 않을 만큼은 됐다. 그러나 — 두 사람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였다.

그 방의 크기를 양팔로 잰 것은 — 내가 그 방에서 한 첫 번째 일이었다.


책상이 그날 저녁에 들어왔다.

학교 근처 중고가구점에서 5만 원에 산 책상이었다. 의자도 같이 — 1만 5천 원. 모니터는 — 자취방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24인치 LG. 4년쯤 된 거였다.

PC 본체는 — 다음 주에 들였다. 부품을 직접 사서 조립했다. 메모리 8기가, SSD 256기가, CPU 인텔 i5. 그 시기로는 — 적당히 좋은 사양이었다. 부품값을 다 합치면 80만 원쯤이었다.

책상 위에 PC 본체를 올려놨다. 모니터를 그 옆에. 키보드 마우스를 그 앞에. 노트북은 — 책상 한쪽에 따로.

배치를 끝내고, 의자에 앉았다.

빈 방의 빈 의자에 — 처음으로 앉아 봤다.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빡였다.


5,000만원이 그 다음 주에 회사 통장에 입금됐다.

자본금이었다.

그 5,000만원은 — 8년 동안 skima 외주로 모은 돈의 거의 전부였다. 학부 2학년 가을부터 2013년 2월까지 — 한 학기에 평균 600~700만원씩, 어떤 학기엔 1,000만원 이상씩 — 통장에 들어왔다.

들어온 돈으로 — 책을 사고, 컴퓨터 부품을 사고,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자취방 월세를 내고, 학식보다는 가끔 학교 앞 식당을 갔다. 그 외에는 — 거의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게 아니었다. 쓸 데가 없는 종류의 돈이었다.

스무 살 초반의 나에게 — 한 학기에 700만원은,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큰 돈이었다. 큰 돈을 갖고 있었지만 — 큰 돈을 쓸 줄은 몰랐다. 그래서 — 모았다.

8년 동안 모인 돈이 5,000만 원이었다. 그 돈을 회사 통장에 옮기는 그날 — 이체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화면을 멈춰 봤다.

이 돈은 — 8년의 새벽이었다.

이 돈을 회사로 옮긴다는 것은 — 8년의 새벽을, 그 다음 새벽의 연료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이체 버튼을 눌렀다.

회사 통장의 잔고가 — 0원에서 49,990,000원이 됐다. 1만 원이 수수료로 빠져 있었다.

그 49,990,000원이 — 그 시점, 주식회사 구름의 전 재산이었다.


그 주에, 한 가지를 결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6,920만원의 의무.

삼성전자 IT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받은 — 학기별 지원금의 누적. 졸업 후 삼성전자 입사를 약속한 대가의 선급. 정확한 금액이 — 6,920만원이었다.

그 의무를 — 입주 그 주에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학과 사무실에 가서, 박사를 그만두겠다, 6,920만원을 토해내겠다, 삼성에 가지 않겠다 — 한 번에 끊을 수 있었다.

끊지 않았다.

이유는 — 두 가지였다.

하나, 박사를 끊으면 — 어머니께서 통화 끝에 하신 그 한 마디가 깨졌다.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박사를 끝내는 것은 — 어머니께 한 약속의 절반은 지키는 일이었다. 회사를 만드는 것은 — 어머니께 한 약속의 다른 절반을 어기는 일이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 약속은 — 절반은 지키고 절반은 어긴 모양으로, 그래도 모양은 남았다. 박사를 끊으면, 모양도 안 남았다.

둘, 6,920만원을 — 그 시점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 통장의 49,990,000원에 6,920만원을 더할 수도 없었고, 거기서 6,920만원을 빼낼 수도 없었다. 그 돈은 — 회사가 한 번은 자기 자리를 잡은 다음에, 회사 밖에서 만들어내야 할 돈이었다.

그 시점에는, 그 돈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를 — 한 번도 가늠하지 못했다.

가늠하지 못한 채로 — 의무를 가져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가져감이 — 챕터 4 의 어느 새벽까지 — 정확히 3년을 흐르게 된다. 3년 뒤에 그 6,920만원이 회사 통장에서 학교로 옮겨지는 그날이 — 두 개의 새벽이 끝나는 날이 된다.

그러나 그 시점의 나는, 3년 뒤의 그날을 — 한 번도 미리 떠올리지 못했다.


도메인을 그 주에 결제했다.

goorm.io. 닷컴은 — 누군가가 이미 갖고 있었다. 닷아이오는 — 그 시기 막 뜨던 도메인이었다. 1년에 약 5만원. 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회사 신용카드는 — 아직 없었다. 그게 그 시기 회사의 첫 비용이었다.

이메일은 — [email protected]. wayne 이라는 이름은, 영어 이름을 따로 만들 시간이 없어서, 학부 시절 한 강의에서 영어 발표하면서 적당히 정해 두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명함을 그 주에 발주했다. 100장. 1만 9천 원. 디자인은 내가 직접 했다. PowerPoint 로 했다. 그 시기 인쇄소가 PowerPoint 파일도 받아 줬다.

그 100장의 명함이 — 다음 주에 도착해서 — 책상 한쪽에 쌓였다.

그 100장 중 첫 한 장을, 나는 누구에게 줄지를 — 그 책상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2013.03.[XX] / 18:30 / 산학협력관 201호

어머니가 입주 며칠 후 — 처음으로 사무실에 들르셨다.

전화가 왔다.

"성태야. 학교 앞이다."

"…네?"

"엄마가 — 너 회사 구경 좀 하려고."

10분쯤 뒤, 호실 문이 열렸다.

어머니는 호실에 들어오시자마자 — 한 번 사방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 한 마디도 안 하셨다.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그 한 분이 — 그 호실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 자리를 권해 드렸다. 의자가 한 개였다. 어머니께서 의자에 앉으셨고, 나는 —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여기야?"

"네."

"…좁네."

"네."

"…박사도 같이 한다고 했지."

"네."

어머니께서 잠시 사방을 다시 보셨다. 책상 위에 5,000만원이 들어간 회사 통장 사본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 한 장을 보지 않으셨는지, 보고 못 본 척 하신 건지 — 나는 알 수 없었다.

"…뭐 — 잘 해라."

어머니의 그 한 마디는 — 1월의 통화에서 하신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와는, 톤이 달랐다.

그 톤의 차이를, 그날 저녁의 나는 — 정확히 해석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머니께서는 그 사이의 두 달 동안 — 자기 아들이 약속의 한 쪽을 어기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계셨던 것 같다.

받아들임은 — 동의가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식이 어떤 결정을 한 다음에는, 그 결정을 자기가 해석하려 하기보다는, 그 결정 옆에 한 번 앉아 보기로 한 — 부모의 한 가지 자세였다.

어머니께서는 그날, 그 의자에 앉으심으로써 — 그 자세를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 주셨다.

10분쯤 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엄마 간다."

"…네."

"밥 — 잘 먹고."

"네."

문이 닫혔다. 빈 방의 빈 의자에, 어머니의 체온이 잠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한참을 앉지 않았다.


2025.12.18 / 17:51 / 산학협력관 2층 복도, 201호 앞 (회귀)

12년 9개월이 지난 그 오후, 나는 그 호실 문 앞에 다시 서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안에 있는 회사의 사람들이 —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 채로 — 그 호실 안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문 옆에 손을 댔다. 페인트가 — 12년 9개월 동안 한 번은 다시 칠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의 어느 결은 — 12년 9개월 전과 같은 결인 것 같았다.

그 결을 한 번 더 만져 보고 — 손을 뗐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를 알았다.

EXIT 서류에 사인한 직후, 차를 몰아 이 자리까지 온 것은 — 12년 9개월 전의 5,000만원에게, 정확한 답을 한 번 들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5,000만원이 — 40억 원이 됐다.

그 답이, 5,000만원에게 충분히 좋은 답이었는지 — 나는 그 자리에서도 —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그 답을 들려주러 그 자리까지 갔다는 사실 자체가 — 5,000만원과, 그것을 모은 8년의 새벽에게 — 내가 12년 9개월 만에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

그 인사를 마치고, 차에 다시 탔다.

수원에서 강남까지 — 다시 한 시간을 운전해 돌아갔다.

그날 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응?"

"오늘 — 그 — 일이 잘 끝났어요."

"…그래."

"엄마. 약속 — 절반은 — 지킨 거 맞죠."

전화 너머에서 어머니가 잠시 말이 없으셨다.

"…야."

"네."

"엄마는 — 약속이 절반인지 전체인지를 — 안 따진 지 — 한참 됐다."

나는 그 한 마디 앞에서, 한참 답을 못 했다.

12년 9개월 만에, 어머니께서 그 답을 — 처음으로 — 정직하게 주셨다.

그 답이 — 챕터 0 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 Episode 5. 끝

— 챕터 0 「두 개의 새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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