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0 · Ep.04

본능적으로, 혼자

Part 1 · Ch.00 두 개의 새벽

본능적으로, 혼자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결정이라고 해서,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뜻은 아니다.

2026.05.[XX] / 09:30 / 강남 어딘가, 021flow 첫 사무실

13년 전에도 혼자였다.

그리고 — 13년이 지난 오늘 아침에도, 혼자였다.

021flow 의 첫 사무실. 책상 한 개. 의자 한 개. 모니터 한 개. 그 위에 노트북. 어제까지 비어 있던 방에, 오늘 아침 내가 들어왔다.

들어와서 한 가지를 다시 알게 됐다.

13년이 지나도, 같은 결정을 또 한다.

같은 결정의 무게가 — 13년 전과 비교해서 가벼워졌는지, 무거워졌는지를 — 그 아침 자기 자신에게 잠시 물었다.

답은 —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같은 무게였다. 다만 그 무게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 13년 전의 나는 몰랐고, 오늘 아침의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게 13년의 차이의 전부였다.

그 차이를 만든 13년의 첫 페이지가 — 2013년 2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2013.02.[XX] / 21:14 / 학교 앞 호프집

skima 멤버 여덟 명이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2005년의 네 명에서 8년이 흘러, 그 학기엔 여덟 명이 됐다. 영준이 형 같은 선배도, 민호 같은 동기도, 지훈이 수진이 같은 후배도, 그 자리에 더 어린 후배도 — 다 섞여 있었다.

학기말 모임이었다. 누군가의 졸업, 누군가의 입대, 누군가의 휴학, 누군가의 인턴 합격 — 한 자리에 다 모이는 자리는, 그 학기엔 이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잔을 들었다.

"할 말이 있다."

여덟 명이 한 번에 나를 봤다.

"나 — 회사 만든다."

순간 정적이 짧게 흘렀다. 어떤 친구는 잔을 내려놓았다. 어떤 친구는 잠시 웃었다. 누가 먼저 입을 열지 —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봤다.

먼저 물은 건, 지훈이었다.

"뭐 만드는데요."

"구름."

"그거 — 형이 옛날부터 만들던 거?"

"응."

"…그거를?"

"응."

다시 정적. 그 정적의 한가운데에서 —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같은 학번 친구. 평소 말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같이 하자는 거야?"


나는 그 친구의 얼굴을 잠시 봤다.

그 친구는 — 같이 하자고 하면 같이 할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그 답을 들으려고 잔을 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평소엔 늘 자기는 자기 길 가는 얼굴이었는데, 그 저녁에는 — 어쩐지 — 옆길로 가도 되는 얼굴이 잠깐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도 — 나는 답을 길게 고르지 않았다.

"아니."

한 음절이었다.

그 친구는 잠깐 자기 잔을 봤다. 그러더니 한 번 웃었다. 그 웃음은 — 거절당한 사람의 웃음이라기보다는, 자기가 거절을 기대하지 않은 자리에서 거절을 받아 든 사람의 가벼운 의외의 웃음이었다.

"…알았어."

내가 한 마디 더 붙였다.

"자리 생기면 부를게."

그 친구는 그 한 마디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잔을 들었다. 다 마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는 — 그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여덟 명 중 누구도 그 다음에는 그 질문을 다시 묻지 않았다.


두 번째 질문은, 한 번호 후배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모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형. 근데 — 왜 혼자야?"

나는 잔을 잠시 내려놨다.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에게 답을 한 번 물어봤다.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답은 — 모두 사후에 만들어 붙일 수 있는 종류의 답이었다. 진짜 답은 아니었다.

진짜 답을 떠올리려고 — 그 자리에서 — 내 안의 어딘가를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진짜 답은 없었다.

없는 답을 — 그 자리에서 — 정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몰라."

후배가 한 번 웃었다.

"…모른다고요?"

"몰라. 그냥 — 본능적으로."

그 답을 한 순간, 나는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자기 결정의 이유를 모른다고,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말한 적이 — 그 저녁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 나는 — 어떤 결정이든 — 사후에 합리적인 답을 한 번은 만들어 붙이고서야 자리에 앉던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만은 — 답을 만들어 붙이지 않았다.

답을 만들어 붙이지 않은 그 자리가, 그 자리에 있던 여덟 명 중 누구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는 — 그 저녁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저녁 이후, 그 여덟 명 중 누구도 — 같이 하자는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 분명했다.


모임이 끝나고, 자취방까지 혼자 걸어갔다.

학교 앞에서 자취방까지 — 도보로 30분이 좀 안 됐다. 평소엔 버스를 탔다. 그날은 걸었다.

새벽 한 시쯤이었다. 2월의 길은 차가웠고,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멀리 가로등 하나가 깜빡였다.

걸으면서 —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왜 혼자야.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호프집에서나 길 위에서나 같았다.

그러나 — 길 위에서는 한 가지를 더 알게 됐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결정이라고 해서,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

답이 떠오르는 결정만 하는 사람은 — 자기 안에 이미 있는 답의 범위 안에서만 산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결정을 — 그 답이 없는 채로 — 한 번은 통과해 본 사람만이, 자기 안에 없던 답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본다.

그 저녁의 나는 — 그 한 가지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채로 — 자취방까지 걸었다.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른쪽 노트북을 켰다. 구름 가입자 알림이 두 개 와 있었다. 한 명은 한국, 한 명은 — 도메인 끝이 .br 이었다. 브라질이었다.

그 두 명이 그 저녁 — 내가 아무에게도 같이 하자고 하지 않은 채 결정한 그 회사의 — 그 시점의 전 세계 사용자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본능의 정체에 대해 — 13년 동안 가설을 두 개쯤 만들어 봤다.

하나는 skima 가설이다.

8년 동안 skima 를 운영하면서, 나는 한 번도 — 진짜 의미의 "동료"라는 단어를 자기 안에 자리 잡게 한 적이 없었다. 영준이 형이 떠나면서 셋의 무게를 내 위에 옮겨 놓고 간 그 가을 이후, 나는 모든 사람을 — 내가 책임지는 사람으로만 알게 됐다.

내가 책임지는 사람과 같이 회사를 시작한다는 문장은, 나에게는 — 문법이 맞지 않았다. 회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한 명이고, 그 한 명이 책임지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합류한다. 그 어순이 — skima 8년 동안 내 안에 박힌 어순이었다.

다른 하나는 Cloud9 가설이다.

Cloud9 이 1년 먼저 발표한 그 아침의 통증이 — 결정의 속도를 누구와도 나누면 안 된다는 강박을 내 안에 심었다. 두 사람이 결정하면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것보다 느리다. 한 번이라도 1년을 잃었던 사람은 — 또 한 번 1년을 잃을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이 두 가설 중 어느 게 맞는지를, 나는 그 후 13년 동안 — 한 번도 정확히 결론짓지 못했다.

다만 두 가설 다 — 어딘가는 맞았다. 그 어딘가가 그날 저녁 호프집의 잔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것 같다.

본능이라는 단어는 — 자기 안에 박혀 있는 어순과 강박을, 자기가 다 분석하지 못한 채로 그냥 자기 손이 따르게 두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 그렇게 했다.


부모님께도 — 그 결정을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Episode 1 의 그 통화에서, 어머니는 *"엄마는 네가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하셨다. 그 통화에서 나는 — 왜 혼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것을 묻지 않으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 어머니가 그것을 묻지 않은 진짜 이유는, 어머니께서도 자기 아들이 그것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은 — 묻지 않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그 통화 이후, 회사가 잘 되는 동안에도 잘 안 되는 동안에도 — 왜 혼자였느냐를 한 번도 다시 묻지 않으셨다.

그 묻지 않으심이 — 13년 동안 나에게는 — 어머니께서 주신 가장 큰 허락이었다.


2026.05.[XX] / 10:02 / 강남 어딘가, 021flow 첫 사무실 (회귀)

13년이 지난 그 아침, 책상 한 개 앞에서 나는 같은 결정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 그 결정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13년 전 호프집에서 후배에게 답한 그 한 마디를, 그 아침의 나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답했다.

몰라. 그냥 본능적으로.

그 답이 13년 전엔 무서웠고, 그 아침엔 — 편안했다.

13년의 차이가, 그 한 마디 위에서 정확히 측정됐다.


— Episode 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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