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0 · Ep.03

2009 → 2011, UIzard에서 구름으로

Part 1 · Ch.00 두 개의 새벽

2009 → 2011, UIzard에서 구름으로

1등으로 본 것이 1등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견뎌야 했던 시차였다.

2013.03.12 / 11:04 / 수원시 어느 법무사 사무실

법무사가 도장을 들여다보더니 한 마디 했다.

"회사 이름이 — 구름?"

"네."

"한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한자 없습니다."

"…한글로만요?"

"네."

"왜 구름이에요?"

나는 잠시 답을 골랐다. 그 자리에서 솔직히 답하려면, 4년이 필요했다. 그 4년이 어떻게 나에게 한 단어로 압축됐는지를 — 그 자리에서 그 법무사에게 풀어 줄 시간은 없었다.

"…한국어로 짓고 싶었어요."

법무사는 한 번 웃었다. 도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등기 서류 위에 그 두 글자가 처음으로 찍혔다.

찍히는 순간, 나는 4년 전의 어느 새벽이 떠올랐다.


2009.09.[XX] / 02:14 / 학부 4학년 자취방, 책상 앞

Gmail이 막 일상이 되던 무렵이었다.

내가 학부 4학년이 되던 그 가을, 사람들은 메일을 더 이상 다운로드하지 않게 됐다. 메일은 그냥 — 거기 있는 거였다. 어디 있냐고 묻지 않는 거였다. 브라우저를 열면 거기 있는 거였다.

같은 달, Google Docs 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문서가 — 컴퓨터에 안 있어도 되는구나."

같은 학과 친구가 나에게 그 말을 한 게 그 가을이었다. 그 친구는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그 한 마디 위에 멈춰 있었다.

메일도, 문서도, 브라우저로 옮겨 갔다.

그러면 — 그 다음은?

답은 분명했다.

코드.

사람들은 곧 코드도 브라우저로 옮기려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첫 줄을 만들 것이다.

그 누군가가 — 내가 될 수 있겠다고, 그 자취방의 새벽에 처음 생각했다.


이름을 그날 밤 지었다.

UIzard.

UI 와 wizard 의 합성. 학부 4학년의 새벽에 적당히 떠올린 단어였다. 거창했고, 가벼웠다. 그 시기 나는 — 자기가 짓는 이름이 자기 인생의 어떤 무게를 갖게 될지 가늠하지 못하는, 그런 가벼움 안에 있었다.

첫 코드는 자바스크립트 50줄짜리 에디터였다. 브라우저 안에서 코드를 색깔로 구분해 보여 주는, 그것뿐이었다. 저장도 안 됐다. 새로고침하면 사라졌다.

그래도 그 화면을 보고 — 나는 한 가지를 알았다.

된다.

브라우저 안에서, 코드가, 코드처럼 보인다.

그날 밤 두 시간 동안 — 세계 어디에도 같은 시도가 없는지 검색했다. 영어로, 한국어로, 일본어 자판으로 더듬더듬. 없었다. 비슷한 발표도, 베타도, 깃허브 저장소도.

내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 그 새벽 두 시간 동안 —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 한 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 후 1년 동안 — 나를 가장 게으르게 만든 한 가지이기도 했다.

처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은 두 번째가 올 거라는 것을 잠깐 잊는다.


2010.07.[XX] / 09:30 / 자취방, 같은 책상

1년 뒤였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평소처럼 밤사이의 IT 뉴스를 훑고 있었다. 그 시기 나는 Hacker News 를 매일 아침 읽는 습관을 막 들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화면 한복판에 한 줄이 떠 있었다.

"Cloud9 — IDE in your browser."

나는 그 한 줄을 한참 응시했다.

링크를 누르지 않았다. 잠시 노트북을 덮었다. 자취방 창문을 열었다. 7월의 아침 공기가 들어왔다. 그 공기가 평소보다 차게 느껴졌다.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링크를 눌렀다. 사이트가 떴다. 그들이 만든 화면이 떴다. 색깔. 자동완성. 저장. 협업. 깃 연동.

그 화면이 떠 있는 동안 — 나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질문은 짧았다.

왜 너는 이걸 1년 전에 봤는데, 만들지는 않았는가.

답은 더 짧았다.

처음이라는 사실로, 1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분하다기보다는, 통증에 가까웠다.

분노라면 누군가에게 갈 수 있는 것이었다. 통증은 나에게서만 났다.

그날 오후, 나는 자취방 책상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책상엔 UIzard 의 코드가 그대로 열려 있었다. 1년 전의 그 50줄에서, 나는 그동안 — 정확히 200줄밖에 더 짜지 못했다. 1년에 200줄. 한 달에 17줄. 하루에 0.5줄 남짓.

그 숫자가 그날 오후 나를 가장 정확하게 측정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날 오후가 내 인생의 어떤 분기점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 본 것을, 본 것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날 오후 이후, 나는 본 것을 본 것으로 두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그 견디지 못함이 — 그 후 16년을 끌고 갔다.

좋은 동력이기도 했고, 나쁜 동력이기도 했다. 그게 동력이라는 사실 자체는 — 한 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세상이 내 생각을 따라오는 데 1년이 걸렸다.

그 사실은 나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쳐 줬다.

하나 —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메일과 문서가 브라우저로 갔다면, 코드도 간다. 그 직관은 1년 만에 외부에서 검증됐다.

둘 — 직관은 부족하다. 본 사람이 만든 사람은 아니다. 만든 사람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다. 알려진 사람이 — 결국 그 카테고리의 이름이 된다.

Cloud9 이 떴다는 것은 — 그 카테고리의 이름이 Cloud9 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가능성을, 나는 그 1년 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가늠하지 않았었다.


2011.03.[XX] / 16:00 /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박사 과정 입학식 직후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학과는 삼성전자 IT융합학과. 6,920만원의 약속. 입학식 끝에 같은 기수 동기 몇 명과 학교 앞 카페에서 짧게 모였다. 모두 한 다리 건너 알던 얼굴들이었다. 다들 — 자기가 연구할 분야 얘기를 한 마디씩 했다.

"성태 형은 — 뭐 하실 거예요?"

"그게 — 클라우드 IDE 비슷한 걸 만들어 보려고."

"클라우드 — 뭐요?"

"브라우저에서 코드 짜는 거. 잘 — 모르시죠."

"…음. 처음 들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알았다. 한국에서 이 카테고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 그 카페에 한 명도 없다. 박사과정 동기 안에도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 아직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첫째, 시장이 없다는 뜻이었다. 둘째 — 시장의 이름을, 내가 지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두 번째가 그날 카페에서 나를 자리에 묶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UIzard 의 코드를 다시 열었다. 250줄. 1년 7개월 동안 250줄.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 그날 저녁 처음으로, 나에게 일을 다시 시키는 동력으로 변했다.

코드의 가장 윗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UIzard - browser based IDE
// (C) 2009 Sungtae Ryu

나는 그 줄에 커서를 올려놓고 한참을 멈춰 있었다.

UIzard.

학부 4학년의 새벽에 적당히 붙인 이름. 그 이름은 — 내가 그날 오후의 카페에서 박사 동기들에게 "클라우드 IDE 비슷한 걸"이라고 설명한 그 카테고리의 이름으로는 — 너무 가벼웠다.

이 이름으로는 — 시장의 이름을 만들 수 없다.

그 사실이 그 저녁 분명해졌다.


이름을 다시 짓기로 했다.

조건이 있었다.

하나, 한자가 아닐 것. 둘, 영어가 아닐 것. 셋, 가벼울 것. 넷, 그러나 가벼움 자체가 의미를 품을 것.

영어보다 가볍고, 한자보다 친근하고, 그러면서도 —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이 새로운 시대의 무언가를 이름 한 단어로 품을 수 있는 한국어 단어.

나는 종이에 단어들을 적었다.

하늘. 바람. 빛. 별. 공기. 안개. 비. 물.

다 적당했고, 다 부족했다.

그러다 한 단어를 적었다.

구름.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았다.

하나, 클라우드의 한국어 그대로 — 의미가 직접 닿았다. 둘, 두 글자였다. 어떤 영어 단어보다, 어떤 한자보다, 입에 가벼웠다. 셋, 가벼움 자체가 의미였다. 떠다닌다. 형태가 없다. 어디에나 있다.

종이 위에 그 두 글자를 한 번 더 적었다.

구름.

그 두 글자가 종이 위에서 — 처음으로 — 자기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코드의 윗줄을 고쳤다.

// goorm - cloud based IDE
// (C) 2011 Sungtae Ryu

UIzard 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goorm 이 들어간 그 한 줄을 — 한참 응시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 자기가 지난 1년 7개월 동안 부끄러워 한 250줄에, 다시 시작할 자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 위에 게으르게 누워 있던 1년에, 끝을 그어 주는 것이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본 사람이 만든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를 한 번에 결정한 셈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세 가지를 한 번에 결정했다는 사실을 — 내가 결정했는지 그 두 글자가 결정해 줬는지 — 헷갈려 했다.

그 헷갈림이, 그 후 12년 9개월 동안 — 내 결정과 구름의 결정의 경계를 자주 흐려 놓았다.


2011.05.[XX] / 03:21 / 자취방

이름을 바꾼 이후의 두 달은, 그 전 1년 7개월보다 길었다.

저장이 됐다. 새로고침해도 코드가 사라지지 않았다. 색깔이 늘었다. 자동완성의 첫 버전이 들어갔다. 첫 외부 사용자가 가입했다.

그 첫 외부 사용자의 이메일 주소를 — 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학교 이메일이었다. 같은 학교, 다른 학과. 내가 모르는 사람.

그 가입 알림이 핸드폰에 떴을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새벽 세 시 이십 분이었다.

알림이 짧게 진동했다. 나는 그 진동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 진동이 — 처음으로 — 나에게 한 가지를 알려 줬다.

이건 더 이상 — 내 책상 위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자기 브라우저에서, 내가 짠 코드 위에 자기 코드를 짜고 있다.

그 사실이 그 새벽에 나를 가장 무겁게 만든 한 가지였다.

기뻤다. 동시에 — 무서웠다.


그날 새벽 이후, 매일 한 명씩, 두 명씩,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skima 멤버들도 다 들어왔다. 그 학기엔 이미 skima 가 4명에서 8명으로 늘어 있었다. 8명 모두 구름의 베타 사용자였다. 그들이 자기 학과 친구들에게 보여 줬다. 그 친구들이 또 보여 줬다.

2012년이 끝나갈 무렵, 가입자는 — 구체적인 숫자는 그 시기 노트에 적혀 있을 것이다. 정확한 숫자를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시기 나에게 중요했던 건, 숫자가 아니었다.

숫자가 매주 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매주 늘어난다는 것은 — 이걸 회사로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가 만들 거라는 뜻이었다. Cloud9 처럼. 그러나 이번엔 — 그 누군가가 또 외국 회사라면, 한국에서 코드를 짜는 사람들의 책상은 그 외국 회사의 책상이 될 것이다.

그건 내가 견딜 수 있는 결말이 아니었다.


2013.03.12 / 11:04 / 수원시 어느 법무사 사무실 (회귀)

그 모든 4년이 — 법무사 앞에서 한 마디로 압축됐다.

"…한국어로 짓고 싶었어요."

법무사는 한 번 웃었다. 도장을 책상 위에 올렸다. 등기 서류 위에 그 두 글자가 찍혔다.

구름.

도장이 종이를 누르는 그 짧은 소리를, 나는 그 후 12년 9개월 동안 — 어떤 결정의 순간마다 — 다시 들었다.

이름이 회사가 되는 소리. 본 것이 만들어진 소리. 1등으로 본 것이, 1등으로는 아니었지만 — 적어도 한국에서는 1등으로 만들어지기로 시작한 소리.

그 소리가 — Episode 1 의 새벽 세 시의 그 노트의 동그라미를 — 종이 위에서 도장으로 옮긴 소리였다.


— Episode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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