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0 · Ep.02

2005, 네 사람

Part 1 · Ch.00 두 개의 새벽

2005, 네 사람

리더라는 자리는 누구도 시켜주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 하나가 시켜주는 순간 — 거절할 수 있는 자리는 또 아니다.

2013.05.[XX] / 22:47 / 학교 앞 호프집

네 번째 자리였다.

같은 친구를 같은 자리에 네 번째 앉혀 두고, 같은 말을 다른 각도로 네 번째 하고 있었다.

"형. 저 진짜 — 못 해요."

"왜."

"코드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가르쳐 줄게."

"형이 가르쳐 줘서 되는 거면, 진작 누가 했겠죠."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 친구의 얼굴을 다시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8년 전의 얼굴 네 개를 겹쳐 놓았다.

그 네 개가 떠오르는 순간,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이 친구는 다섯 번째 skima 다.

처음 네 명은 —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내가 선택받은 거였다. 그래서 그 다음 한 명만은 — 내가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다섯 번째 자리를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 그 8년 전의 네 명에서 시작한다.


2005.09.[XX] / 19:30 /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동아리방

영준이 형이 가방을 들었다.

"성태야. 다음 학기부터 — 네가 해."

"…뭘요."

"skima."

방 한가운데 책상엔 PC 두 대. 모니터엔 학과 사무실에서 받아온 사이트 시안. 형은 입대 영장을 가방 끝에 꽂아 두고 있었다.

"민호도 있고. 지훈이 수진이도 있어. 네가 제일 오래 했잖아."

"오래 했지, 잘하지는 않잖아요."

"오래 한 사람이 잘하게 된다."

형은 그 말을 던지고, 자기는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의 가벼운 미소로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쟤네 — 잘 부탁해."

문이 닫혔다. PC 두 대의 팬 소리만 남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건, 리더라는 자리는 누구도 시켜주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누구 하나가 시켜주는 순간 — 거절할 수 있는 자리는 또 아니라는 것.

나는 시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성균관대학교 OO학과 홈페이지. 마감 11월. 견적 200만원.

처음 받아 본 외주의 첫 페이지였다.


skima는 Sungkyun Interactive Media Agency 의 약자였다.

이름이 거창했다. 사람은 네 명이었다. 영준 형이 그 학기 빠지면 셋이었다. 그러나 형이 마지막으로 던지고 간 한 마디가 — 셋을 다시 넷으로 만들어 줬다.

"민호. 지훈. 수진."

내가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 학기 첫 회의를 그렇게 시작했다.

민호는 나와 같은 학번이었다. 코드는 나보다 빨랐고, 디자인은 나만큼 못 했다.

지훈은 한 학번 후배였다. 코드는 늦었고, 성실했다.

수진은 같은 후배. 디자인을 했다. 정확히는 — 디자인을 좋아했다. 코드는 못 했고, 그래서 좋아했다.

이 셋이 그 학기 내 어깨 위에 얹혔다.

스물 한 살이었다. 선배 한 명이 떠나면서 셋의 무게를 내 위에 옮겨 놓고 갔는데, 나는 그 무게가 정확히 몇 킬로그램인지 그 자리에서는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 가벼운 줄 알고 받았다.


첫 회의는 짧았다.

"학과 사무실에서 11월까지 달래. 돈은 200."

"넷이 200이면…"

"50씩."

"50으로 한 학기를 살 수는 없잖아."

"살자고 받는 게 아니야. 만들자고 받는 거지."

지훈이 말없이 노트를 폈다. 수진이 처음으로 웃었다. 민호는 PC 화면을 키웠다.

그날 밤, 우리는 와이어프레임 한 페이지를 그렸다. 수진이 손으로 그렸다. 빨간 펜. 머리말, 메뉴, 본문, 푸터. 학과 로고 자리. 게시판. 교수 소개. 학사 일정.

"…너무 단순하지 않아?"

민호가 물었다.

"단순한 게 빠르게 끝나."

내가 답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 그날 밤 내가 한 그 한 마디가, 그 후 16년의 모든 결정의 어떤 핵을 만들었다. 단순한 것이 빠르게 끝난다. 그리고 — 빠르게 끝낸 것만이, 다음 단순한 것을 시작할 시간을 준다.

나는 그날 그 말을 그렇게까지 길게 풀어내지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단순한 게 옳다.


문제는 클라이언트였다.

학과 사무실의 한 분이 — 시안을 보고 — 한 마디 했다.

"이거 좀 — 너무 학생 작품 같지 않아요?"

수진의 얼굴이 굳었다. 빨간 펜이 책상 위에서 한 번 굴렀다.

"학과 분위기에 맞게, 좀 — 우아하게요."

"우아하게."

"네."

우아함은 견적서에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동아리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진의 말이 처음으로 길었다.

"오빠. 우리 — 이거 안 해도 돼요?"

"왜."

"저 사람이 원하는 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훈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도 침묵으로 같이 끄덕였다.

나는 셋을 잠시 봤다. 그리고 — 그 순간, 셋의 얼굴에서 한 가지를 봤다.

그 한 가지가, 그 후 12년 9개월 동안 내가 본 모든 직원의 얼굴에 다 들어 있었다.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결정해 줘.

그 얼굴은 거절을 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동의를 원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다만 — 누군가 한 사람이, 자기 대신 책임의 칸에 서 줄 것을 원하는 얼굴.

영준 형이 두고 간 그 자리가, 그날 밤에 처음으로 — 무게로 변했다.

"한다."

내가 말했다.

"우아하게."

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민호가 PC를 다시 켰다. 지훈이 노트를 다시 폈다.

그 학기의 모든 새벽이, 그날 밤 동아리방에서 시작됐다.


마감 일주일 전이었다.

민호가 동아리방에 오지 않았다.

전화기를 켰다. 받지 않았다. 다섯 번째 전화에야 받았다.

"형."

목소리가 작았다.

"왜."

"저 — 시험이 — 진짜 좀 — 죄송한데."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알았다. 민호는 안 온다. 이번 주는 안 온다. 다음 주도 안 온다. 마감까지 안 온다.

전화를 끊었다. 동아리방에 지훈과 수진이 나를 보고 있었다.

"민호 형은요?"

"안 와."

"…언제?"

"마감까지."

수진이 빨간 펜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훈이 코드를 보던 화면을 닫았다. 셋이 말없이 PC 한 대를 같이 쳐다봤다.

게시판 모듈이 절반밖에 안 만들어져 있었다. 그게 민호의 몫이었다.

"성태 형이 다 짤 거예요?"

지훈이 물었다.

"응."

"…일주일이에요."

"알아."

"잠 자요?"

"안 자."

수진이 웃지 않았다. 그 웃지 않음이, 그 학기 내가 본 가장 무서운 얼굴이었다. 수진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 우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의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한 가지를 결정했다.

그 학기엔 절대 그 얼굴을 두 번 보이게 하지 않겠다.


다섯 밤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자지 않은 게 아니라, 자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새벽 네 시쯤 책상에 엎드려 30분쯤 졸고, 일어나서 다시 코드를 짰다.

지훈은 매일 새벽 두 시까지 옆에 있었다. 잠을 자야 다음 날 학교를 갈 수 있다고, 새벽 두 시면 무조건 보냈다. 보내고 나면 동아리방에 나 혼자였다.

수진은 디자인을 다 끝낸 다음, 매일 저녁 도시락을 싸서 가져왔다. 어떤 날은 김밥, 어떤 날은 라면. 한 번은 떡볶이.

"오빠. 이거 — 엄마가 만들었어요. 엄마한테 학과 사이트 만든다고 했더니, 며칠은 굶을 거니까 가져다 주래요."

수진의 엄마가 만든 떡볶이는 매웠다. 그 매운맛이 그 새벽의 어떤 부분을 견디게 했다.

마감 전날 새벽 다섯 시 — 게시판이 돌아갔다. 첫 글이 붙었다. 글의 내용은 "테스트". 작성자 이름은 "성태".

나는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화면이 내 인생에서 본 첫 번째 "출시"였다. 그 후 16년 동안 셀 수 없는 출시를 보게 되지만, 그 어느 출시도 — 그 새벽 다섯 시의 그 "테스트" 한 줄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게 첫 번째였기 때문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200만원이 입금됐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기억난다. 정확히는 — 200이 아니라 199만 8,000원이었다. 수수료가 있었던 모양이다.

50만원씩 나눴다.

민호 몫의 50만원은 — 내가 가져갔다. 지훈과 수진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셋이 그렇게 합의한 셈이었다.

그날 저녁, 학교 앞 분식집에서 회식을 했다. 셋이었다. 민호는 부르지 않았다.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굳이 합의하지도 않았다.

수진이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지훈은 끝까지 안 마셨다.

내가 잔을 들었다.

"고생했다."

"형이 더 했어요."

"그러게요."

"내가 한 게 아니야. 너희가 안 갔잖아."

수진이 한 번 웃었다. 그 학기 처음으로 — 내가 본 수진의 진짜 웃음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날 저녁 셋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게 한 가지 있다.

사람은 — 자기가 책임지는 사람보다, 자기를 책임져 주는 사람을, 더 깊이 신뢰한다.

그 신뢰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섯 밤의 새벽 동안 한 자리에서 안 떠난 사람의 등으로 만들어진다.

그 신뢰가 — 그 후 12년 9개월 동안 내가 모든 직원에게 갚으려 했지만, 한 번도 다 갚지 못한 빚이 됐다.


영준 형은 그 학기, 학교에 잠깐 들렀다. 학과 사이트가 떴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PC 앞에 앉았다.

"오 — 됐네."

"네."

"잘 했네."

"형이 두고 간 거였어요."

"내가 두고 간 게 — 너한테 닿았으면, 그건 네 거다."

형은 한 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한 마디를, 나는 그 후 16년 동안 셀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두고 간 일이 나에게 닿았을 때 — 그 일은 그 사람의 것인가, 받아 든 사람의 것인가.

답은 형이 그날 던지고 갔다.

받아 든 사람의 것.

내가 그 답을 — 12년 9개월 후, 한 회의실에서, 받아 든 종이 위에 사인할 때까지 — 잊은 적이 없었다.


— Episode 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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