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Ch.00 두 개의 새벽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은 아닐 수 있다.
2025.12.18 / 14:02 / 강남구 역삼동 / 모처
EXIT 서류에 도장을 찍던 그날, 나는 잠시 멈춰 그 도장을 들여다봤다.
12년 9개월 전, 수원의 동네 철물점에서 만 원도 안 주고 새긴 도장이었다. "구름" 두 글자. 글자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법무사가 물었다.
"대표님, 사인은 안 하시고요?"
"아, 네."
나는 펜을 들었다. 사인을 하기 전에, 한 새벽이 떠올랐다.
40억 원. 그 숫자는 종이 위에 작은 폰트로 인쇄돼 있었다. 누구도 그 숫자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게 내 12년 9개월의 가격이었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았다. 다만 정확했다. 정확한 가격을 받아드는 일이 어떤 기분인지 — 그날 처음 알았다.
펜이 종이에 닿기 직전, 13년 전 1월의 새벽이 떠올랐다. 그 새벽의 나는, 13년 후의 내가 이 종이 위에 사인을 하리라는 걸 몰랐다. 그렇지만 그 새벽 없이는 — 이 종이도 없었다.
2013.01.17 / 03:47 /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401호
새벽 세 시에 나는 왼쪽 노트북을 닫았다.
일주일에 닷새, 어떤 주는 엿새. 같은 시각에 반복하는 동작이었다. 왼쪽 액정이 어둠으로 잦아들고, 오른쪽 액정이 한 톤 더 또렷해진 것 같았다. 사실은 같은 밝기였다. 다만 내 동공이 옮겨갔을 뿐.
박사 10기. 삼성전자 IT융합학과. 1월 새벽이라 건물 난방은 자정에 끊겨 있었다. 발끝부터 한기가 올라왔다. 무릎담요로도 다 막지 못했다. 책상 위 캔커피 두 개. 마시지 않은 한 캔이 손바닥보다 차가웠다.
왼쪽은 연구. 오른쪽은 — 아직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어떤 것.
이름은 있었다. 두 글자.
구름.
내가 그 두 글자를 처음 노트에 적은 건 2011년이었다.
그 전에는 다른 이름이었다. UIzard. 학부 4학년의 어느 새벽, 적당히 붙인 이름. 2009년이었다.
Gmail이 막 일상이 되던 무렵이었다. Google Docs가 사람들에게 한 문장을 무의식 깊이 심어두던 무렵. "메일도 문서도 브라우저인데 — 그러면 그 다음은?"
나는 그 문장의 다음 페이지를 내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목은 분명했다.
코드.
사람들은 곧 코드도 브라우저로 옮기려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첫 줄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검색했다. 세계 어디에도 같은 시도가 없는지. 없었다.
1년 뒤, Cloud9이라는 회사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 발표를 보고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분하다기보다는 — 내가 너무 일찍 출발했다는 걸 처음 인정해야 했던 밤이었다.
세상이 내 생각을 따라오는 데 1년이 걸렸다. 한편으로는 안심됐다. 직관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조용히 갉아먹었다.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이 가장 먼저 알려진 사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수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 그날 밤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분기점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1등으로 본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1등으로 본 것을 1등으로 만들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됐다. 그 강박이 그 후 16년을 끌고 갔다.
2011년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같은 해 UIzard라는 이름을 버렸다.
그 이름을 싫어한 건 아니었다. 다만 학부 새벽에 적당히 붙인 이름이, 박사 책상에서 다음 4년을 함께할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자도 영어도 아닌 말로 다시 이름 짓고 싶었다. 어떤 영어 단어보다 가벼운 한국어 단어가 있었다. 클라우드 컴퓨팅. 구름 위의 계산.
나는 노트에 두 글자를 적었다.
구름.
그 두 글자를 적은 날부터 2013년 1월의 그 새벽까지 — 정확히 1년 9개월. 구름은 무료 베타로 돌아갔다. 처음엔 skima 동료들. 그다음엔 한 명, 두 명.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 사용자가 가입할 때마다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처음엔 그 진동이 기뻤다. 백 번째쯤부터는 그 진동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날 새벽에도 진동이 한 번 왔다.
화면을 보지 않고도 알았다. 그래도 봤다.
모르는 이메일 주소 하나. 모르는 사람이 내 코드를 자기 브라우저에서 열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잠시 그 이메일 주소를 응시했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엎어 두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 한 번의 진동이 나를 그 자리에 묶었다.
박사 10기였다. 10기. 자기보다 먼저 학위를 받고 어딘가의 책상에 앉은 아홉 개의 기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아홉 기수의 선배 압도적 다수는 삼성종합기술원으로 갔다. 또는 삼성전자의 어느 사업부 연구직으로 갔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게 이 학과의 설립 목적이었다.
그게 내가 받은 6,920만원의 의무였다. 정확히 6,920만원. 학기마다 일정 금액이 통장에 들어왔다. 책을 샀다. 컴퓨터 부품을 샀다. 가끔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 돈은 내 미래를 미리 사두는 돈이었다. 미래의 내가 삼성의 어느 책상에 앉아 있을 거라는 약속의 선급.
그날 저녁,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성태야."
"네."
"인사팀에서 연락 왔니."
"아직요."
"아직? 이 시기에 아직이라고?"
나는 말을 골랐다. 어머니는 내가 말 고른다는 걸 항상 알았다.
"엄마, 저 — 그게요."
"왜 그러는데."
"제가 좀 — 다른 생각이 있어요."
침묵. 분노가 아닌 침묵. 분노라면 받아낼 수 있었다. 침묵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데."
"제가 — 회사를 좀 만들어보려고요."
또 한 번의 침묵.
"네 박사는."
"같이 할 거예요."
"같이가 되니, 그게."
답하지 않았다.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렇지만 그날 저녁의 나는 어머니에게 그 가능성을 인정해 줄 수 없었다.
"엄마가 — 엄마가 뭐 하라 마라 할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그 문장의 다음 단어가, 나를 그날 새벽 세 시까지 책상 앞에 묶어둔 진짜 이유였다.
"엄마는 네가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나는 "네"라고만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네"가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는지, 단지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는 뜻이었는지 — 그날의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답은 둘 다였다. 그날 저녁의 나는 약속도 지킬 생각이었고, 동시에 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모순이 12년 9개월을 지탱했다. 한 번도 어머니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못한 채로.
연구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봤다.
왼손은 왼쪽 노트북 위에. 오른손은 오른쪽 노트북 위에.
매일 새벽 그 둘 사이를 옮겨가는 손이, 그날 새벽엔 두 개로 정확히 나뉘어 있었다. 그 모양이 내 인생의 어떤 진실을 너무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담요가 의자 아래로 떨어졌다. 줍지 않았다. 연구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새벽 세 시의 복도는 내 발소리만으로도 가득 찼다. 복도 끝까지 걸었다. 지도교수의 방 앞이었다.
방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 불이 꺼져 있다는 사실이, 그날 새벽 나를 가장 깊이 안심시켰다.
지도교수는 만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사과정 입학 때도, 사이드 프로젝트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도, 사용자가 늘었다고 보고했을 때도 — 한 번도 "그건 그만하고 연구에 집중해라"라고 말한 적 없었다.
다만 가끔 — 정말 가끔, 거의 다른 화제 끝에 — 한 문장씩 흘렸다.
"성태야. 뭐가 됐든. 네가 시작한 건 끝까지 가라."
그날 새벽 나는 꺼진 그 방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지도교수가 만약 그 방 안에 있었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 만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방 앞에서 자기 자신을 만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는 일은, 결국 자기가 한 번은 자기를 만류해 본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
나는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물었다.
"이걸 시작할 자격이 너에게 있는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답은 모두 부정이었다.
박사도 끝내지 못했다. 회사를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사람을 데려본 적도 없었다. 자기가 만든 것의 사용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조차 그날 새벽엔 기억하지 못했다.
자격이라는 단어로 자기를 측정한다면, 나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래도 답을 하나 떠올렸다.
자격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면, 그 자리엔 결국 다른 누군가가 앉을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내가 아닐 거라는 건 분명했다.
자격을 갖춘 다음에 시작하는 사람의 자리는 — 시작한 다음에 자격을 갖춰 가는 누군가가 이미 차지하고 있다.
방으로 돌아왔다.
서랍에서 노란 표지의 대학노트를 꺼냈다. 박사 1년 차에 학교 앞 문구점에서 다섯 권 사둔 것 중 마지막 한 권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쳤다. 모나미 검정 볼펜으로 한 줄 적었다.
3월 12일. 법인.
옆에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안에 두 글자를 더 적었다.
구름.
동그라미를 한 번 더 그렸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진했다. 세 번째는 더 진했다. 아홉 번 더 그렸다. 동그라미 안쪽이 종이 결을 따라 거의 검은색이 됐을 때 펜을 내려놓았다.
오른쪽 노트북에서 알림이 또 떴다. 새 사용자였다. 보지 않았다.
두 노트북을 모두 닫았다. 양손을 책상에 올렸다. 새벽 세 시 사십칠 분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이걸 시작할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이번엔 답이 더 짧게 떠올랐다.
"모르겠다. 그래도 시작한다."
그 답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새벽 내가 자기 자신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답이 그 한 줄이었다. 그 한 줄로 충분히 하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담요를 주워 의자 위에 가지런히 개어 두었다. 책상 위 캔커피 두 개 중 따지 않은 하나를 가방에 넣었다. 따 둔 하나는 그 자리에 두었다. 연구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복도 끝의 지도교수 방의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꺼진 불을 가끔 떠올린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은 자리.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자리. 다만 내가 나에게 통과시킨 자리.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았다.
— Episode 1. 끝